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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victory80 ·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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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5월 8일

📰2025년 5월 8일 대조국전쟁 승전 80주년을 앞두고 주한 벨라루스공화국 대사,주한 키르기즈공화국 대사, 주한 러시아연방 대사, 주한 타지키스탄공화국 대사, 주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주한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대사 등 6명이 ''NEWS1'' 통신사에 공동기고문을 올렸습니다. 『소련국민의 대조국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문 노어로 읽기 🇰🇷전문 한국어로 읽기 주요 내용: 🎖올해는 대조국전쟁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소련 국민의 승리는 유럽 국가들에 자유를 돌려주었고, 모든 국가의 주권 평등 원칙에 기초한 현대국제 관계 시스템 형성에 기여했으며, 미래 세대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유엔 창설의 조건을마련했습니다. 👉소련에 대한 전쟁은 전면적인 성격을 띠었고, 최종 목표는 소련 국가 체제의 파괴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을 물리적으로 말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사망한 2,700만 명 중 850만 명은 대조국전쟁의전선에서 전사했고, 나머지는 민간인들로 굶주림과폭격으로 숨지거나, 게토와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치와 그 부역자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추방 및 말살 행위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입증된 사실로서 소련 민족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파시즘에 대한 승리는구소련 공화국 인민들의 용감한 투쟁, 영웅적 정신, 그리고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의 모든 공화국이 공동의 적에 맞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싸웠습니다. 소비에트의 한 노래 가사처럼 이 승리는 “모두가 함께 이룬 하나의 승리”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다면 필연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승전 용사에 대한 기억을 폄훼하거나, 나치와 그 부역자를 미화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Victory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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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4월 18일

🎖오늘 #승리의영웅들 코너에서는 위대한 전공을 세운 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우리 세대가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생생한 연결고리의 역할을 해준 한 영웅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게오르기 다닐로비치 일랴셴코는 소련의 대일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세 명의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입니다. 1945년 8월 10일, 그와 그의 동료들은 라선항을 떠난 일본군 함선을 파괴하라는 전투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소련 조종사들은 임무를 완수합니다. 다른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 함선의 대공포 사격으로 일랴셴코의 비행기가 불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불타는 폭격기는 전투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임무를 계속 수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랴셴코는 소련 영웅 칭호를 사후에 수여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이야기의 흥미로운 전환이 시작됩니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랴셴코는 불타는 비행기를 바다에 착륙시키고 폭격수와 함께 구명보트로 옮겨 탔습니다. 그들은 며칠을 바다에서 떠돌다 한 어촌 마을 인근 해안에 정박했습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지만, 일본 헌병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 체포되어 서울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이송됩니다. 당시 일본군이 전쟁 포로에게 어떤 '인도주의'를 보여주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 13일, 일랴셴코는 자신의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비행을 멀리하지 않았고, 전역 후에도 평생을 마하치칼라 항공업에서 일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오래된 기록 문서에서 전사자 명단 옆에 손 글씨로 쓰인 '착오', '생존'이라는 메모가 가져오는 순수한 기쁨의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Victory80#We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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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4월 12일

🎖오늘 #승리의영웅 주간 연재 코너를 통해 특별하고도 다면적인 삶을 살아간 인물, 미하일 페트로비치 바라볼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하일 페트로비치 바라볼코(1909~1989)는 제355해군보병대대의 지휘관으로, 역사적인 세이신(청진) 상륙작전에 참전한 인물입니다. 1945년 8월 14일 그가 이끄는 대대의 병사들은 청진에 상륙하여 그곳에 교두보를 확보한 뒤 약 하루 동안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하며 이를 사수했습니다. 미하일 바라볼코는 청진의 초대 군사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일본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군 열병식을 지휘하였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과의 전선에서 상부의 전투 임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용기와 영웅적 행동을 인정받아 바라볼코는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붉은 군대에서 전역한 후 이 놀라운 인물은 영화계로 진출했고, 고향 오데사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때때로 단역 배우로도 활동했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영화 “위험한 순회공연(비소츠키가 주연을 맡은 그 영화)”에 등장한 이 말없는 회의 참석자와 청진 중심부 건물 앞에 서있는 이 근엄한 군인은 한 명의 동일 인물입니다. #Victory80#We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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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4월 4일

🎖다가오는 승전 80주년을 맞아 승리의 영웅들에 관한 주간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소개할 많은 영웅들은 파시스트 침략자들로부터 나라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동쪽 국경에서 일본군과도 싸웠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세이신 전투에 참가한 이들입니다. (세이신은 당시에 사용되던 일본식 명칭으로, 지금은 청진이라고 불리는 도시입니다.) 사진 속에는 소련의 영웅인 미하일 페트로비치 바라볼코와 미하일 이바노비치 코체트코가 있습니다. 오늘은 가운데 해군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 안드레이 스테파노비치 루벤코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안드레이 루벤코는 해군 보병 지원을 위해 8월 14일 상륙한 3급 대위 G.V.테르노프스키 부대 소속으로 세이신 상륙작전에 참가했습니다 (1945년 8월 13~16일). 8월 14일 저녁 테르노프스키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루벤코가 부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해군과 보병들로 구성된 통합 부대의 임무 수행을 훌륭히 지휘하여 적의 수적 우세 속에서도 어려운 밤을 버티고, 15일에 주력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182.9 고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한 가지 사실은 루벤코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해군 신문 ‘보에바야 바흐타’의 사진 기자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의 작전을 기록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많은 사진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루벤코의 회고록 중: “8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은 끊임없는 전투 속에 지나갔다. 8시 10분 일본군은 50미터까지 접근했다. 총 12차례의 공격이 있었고, 그 중 3차례는 육박전으로 이어졌다. 일본군은 칼, 단검, 검을 들고 싸웠다. <…> 또 한 차례의 공격을 막아냈다. '우리…! 우리 군함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이 외침은 용감한 전사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포상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의 머리 위로, 우리의 군함 위로 빛나는 태양, 승리의 태양이 떠올랐다. <…> 8월 15일 정오, 일본군의 포위망은 무너졌다. 그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태평양함대 역사박물관과 ‘보에바야 바흐타’에게 감사드립니다. #Victory80#We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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